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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Ganga (갠지스 Ganges 라는 이름은 영국인이 붙인 이름) 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지점에 이루어진 곳이어서 더욱 더 신명스럽다는 바라나시 Varanasi..., 

바라나시의 강가 강변에 형성된 시가지는 두 사람이 겨우 스칠 정도의 좁은 공간만을 사이에 둔 건물들이 꾸불꾸불 끝없이 이어진 골목길의 연속이다.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길 따라 정처 없이 헤매다보면, 어느 생에 흐르다 지금 이곳에서 이처럼 흐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마저 강물 따라 흐르기 마련이니, 떠나온 곳을 잊고, 가야 할 곳을 묻지 않고자 하는 방랑자가 그저 흐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도 함정은 있다. 

강가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 따라 하염없이 흐르거나, 골목길 정처 없이 헤매다 냄새 좋은 찻집에 주저앉아 찻잔 비우며 오가는 사람 그냥 그렇게 지켜보거나, 강변의 화장터로 향하는 시체가 초라한 들것에 실려 쏜살같이 골목길 스쳐 가는 모습 마주치며 아직 살아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반문하거나..., 

길에서 만나는 것들에 심드렁해질 때면 이 바라나시의 재미를 쫓아 바라나시에 가고 싶은 심정이 불쑥 일어서곤 했다. 그러나 심상함을 대신하는 것으로 바라나시의 시간들에 다시 익숙해지는 것은 게으름 피우고 회피하며 망설이는 시간에 다름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 때문에 짐짓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었다. 
허지만 그 해 그 여름, 골목길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을 것이 뻔한 장마철의 바라나시로 향해지는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불만 보면 달려들 수밖에 없는 불나방이 된 심정으로 들어섰던 세 번 째의 바라나시, 기우였다. 뇌관은 도처에 있는 것. 어떻게, 언제, 무엇 때문에 터지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강과 이어지는 계단 Ghat의 대부분을 삼킨 채 넘실대는 모습으로 주체할 수 없는 격정을 토해내는 것 같은 형상을 보여주는 몬순기의 강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 같은 강가의 폭발적인 모습은 淨化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질수록 그 깊이와 폭발력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는 19세기의 성자 라마크리슈나 Ramakrishna가 살아있는 어머니로 인식하고 섬겼던 깔리 Kali 여신의 부릅뜬 붉은 눈과 날름거리는 혀, 입가의 핏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 여름의 바라나시 강가는 웅변하고 있었다. 

그렇다. 덜어야 할 것이 많은 순례자에게 모자란 것은 만나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만나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그리하여 만나는 모든 것을 끊어버리는 정열이었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절대절명의 힘을 가능케 하는 정열, 정열이었다. 

광란처럼 빗줄기가 난사되던 어느 오후, 못다 푼 비를 머금고 무겁게 흐르는 먹구름을 쫓듯 골목길울 흐르다 석양을 맞게 되었다. 
3천년을 이어오며 대도시로 존속해온 탓에 퇴락하여 스러진 집터에 뒹구는 흙벽돌 파편 하나에도 사연이 담겨있는 듯 싶은 바라나시의 골목길...,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랑비에 하릴없이 젖어 가는 좁은 골목길, 마주치는 것들을 이리 저리 피하며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내는 갖가지 소음마저 그 오후엔 어느 음악, 어느 소리보다 아름답고 소중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그 사람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가는 발길을 서두르고 있었고, 누군가를 챙겨야 할 그 사람은 챙겨야 할 것들 때문에 부산스러웠고,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그 사람은 조바심 때문에 잽 싼 걸음을 참을 수 없었고, 부식거리 사들고 종종걸음치며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날라갈 듯 가벼웠고...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통해 두고 온 세상의 옛 일들을 만났다.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하는 백열등 불빛을 받아 젖은 골목길이 번들거리며 눈에 박히는 것처럼, 흐르듯 골목길 떠돌며 만나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은 두고 온 세상의 일들을 되살리며 기억을 생생하게 만들고 있었다. 

4, 5층의 건물들이 줄을 이어 늘어서 있기에 다른 골목보다 더 어두웠던 골목길, 서 너 발짝 앞에서 마주 오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도록 어두웠던 어느 골목길의 중간쯤에 접어들었을 때, 댓 발짝 앞 어둠 속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고 있었다. 온 몸에서 올라오는 울음이지만,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까닭에 숨이 넘어가는, 숨이 끊기는 것 같은 깊은 울음소리였다. 
가랑비에 푹 젖어 움추려진 작은 몸, 머리카락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들, 두 뺨에 번진 눈물줄기..., 가냘프게 작은 사내아이가 닫힌 문 앞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울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깊은 울음을 울고 있었다. 

아이 쪽을 향해 나가던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 걸으며, 멈추지 않고 아이를 스쳐 지나갈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었다. 깊은 울음을 울고 있는 아이에게 더 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내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절망적인 아이에게 더 한 절망을 안기지 않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이었기에...

생생하게 되살아나던 방금 전까지의 갖가지 기억들이 쏜살같이 사라지고, 골목 골목에서 만나는 일상의 소리와 모습이 희미해지며, 문 닫힌 집 앞에서 소리 없는 울음을 우는 아이의 절규만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학대당하고, 맞고, 우는 아이가 이 지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어른들이 만든 이유 때문에 학대당하는 아이가 이 지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난 절대로 신을 인정할 수 없다. 
"까라마조프家의 형제들"들에서 이반이 알로샤에게 던지는 형식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인류에게 던졌던 그 폭탄의 뇌관이 그 날 오후, 바라나시에서, 그 아이를 통해 내게 터졌던 것이다. 

뒤척이던 밤이 새자 떠나려 나서는 길을 장대비가 막았다. 

장대비가 쏟아진 뒤의 강변 거리는 강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는 흙탕물에 의해 순식간에 간단히 점령된다.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도록 흙탕물에 깊이 잠기는 몇 몇 거리를 피할 수 없어 그냥 건너게되면, 둥실둥실 떠가는 쓰레기들을 피하며 내딛는 발길이 무엇이 밟을지, 어느 밑 모를 구덩이에 빠질지 알 수가 없어 장님모양 조심스레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바라나시를 떠나는 길도 더듬거리는 걸음을 면할 수 없었다. 
진득거리는 분비물 밟는 것이 지겨워 더듬거린 것은 아니었다. 밑 모를 구렁에 빠질 것이 두렵다고 더듬거린 것도 아니었다. 

풀 길 없는 분노와 절망 때문에 멀어버린 눈을 띄울 방도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정무진 _()_ 
사단법인 한인교류회 상임이사
Indo-Korean Foundation

8월 16일 2002년 두륜산 대둔(흥)사 산간한담 기고
Posted by 한국인도교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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