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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3대 주신 중의 하나인 브람마 Brahma(창조의 신)를 모신 세계 유일의 신전이 있는 까닭에 독실한 힌두교 신도라면 일생에 한 번은 순례하기를 꿈꾸는 푸쉬카르 Pushkar, 그런 까닭에 푸쉬카르는 다양한 모습의 순례자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아라발리 Araballi 산맥의 일단이 타르 Thar 사막을 만나는 지점인지라 황막한 사막의 맛과 제멋대로의 모습을 가진 산들이 연출하는 재미있는 경관을 보여주는 푸쉬카르, 그러나 푸쉬카르는 크지 않은 호수를 끼고 올망졸망하게 형성된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푸쉬카르가 인도를 떠돌아다니는 장기 여행자들에게서 시간 보내기에 좋은 장소로 손꼽히게 된 까닭은 부담 없이 한적하게 쉴 수 있는 정도의 작은 마을이면서도 재미있는 경관을 지닌 곳이며,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는  때문일 것이다. 

신전으로 통하는 호숫가의 좁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자리한 찻집에서 온 종일을 죽치며 지켜볼 수 있는 풍경들 - 제 나름의 꿈과 소원을 담고 오가는 순례자, 순례자의 등을 쳐 제 배를 채우려 혈안이 된 덜 떨어진 녀석, 엉덩이에 뿔 난 이 녀석들과 그들의 꽁수에 걸려든 순례자 사이에 전개되는 실강이들, 골목 안의 일원임을 과시하듯 거리낌없이 골목길을 횡행하는 소, 양, 개 등의 짐승들, 언제 어떻게 만나도 싱그러운 꼬마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소음 - 

푸쉬카르 골목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풍경들은 손에 쥐어질 만큼 작은 규모의 마을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풍경들이 아닌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디로 가는 지, 언제 끝이 날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채, 지금 눈 앞에서 흐르는 이 풍경을 그냥 지켜보다가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 지켜보며 하릴없이 또 지나가는 날을 보내는 일, 갈 곳 따로 없고 할 일 따로 없이 흐르는 나그네의 소일거리로 족하지 않을 수 없다. 

눈앞의 흐름 따라 그냥 그대로 몇 달이고 흘러갈 수도 있을 것처럼 그 어느 곳으로도 향하려는 마음이 나질 않는 게 굳이 이상하게 여겨지질 않더니..., 건조하지만 신심이 담긴 음성에 담겨 신의 이름을 찬송하는 짤막한 송가가 몇 시간동안 끈질지게 호수로 던져지던 어느 아침.., 한 순간엔 경이롭게 또 다른 순간엔 성가시게 받아들여지던 송가의 그 지루한 반복을 떨치려는 듯,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 꼭대기에 자리한 채 호수와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사원을 향해 발길이 옮겨졌다. 

이 날이 아니었으면, 경이롭기도하고 성가시기도 했던 그 송가가 아니었다면,  언덕 위의 사원 안에 머물며 수행하던 벽안의 가야뜨리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니, 흐르는 나그네라고 하릴없는 게으름만을 유일의 벗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겠지... 

"나이 삼십 중반, 나름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살면서 해야 하는 짓, 하게 되는 짓 안한 것 없는 것 같고, 하고 싶은 짓도 꽤 많이 했지요. 그러니 결혼인들 왜 안 했고, 맘에 드는 남자를 찾아 헤매는 짓이라고 왜 안 했겠소. 어떻든 삼십을 넘기는 아쉬움도 꽤 오래 전의 기억으로 가끔씩 떠오르게 된 무렵, 어느 때부터인가 갑자기 같은 꿈이 계속 반복되거나 같은 주제를 가진 꿈들을 계속하여 꾸게 되면서,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오. 

곱게 늙은 게 분명한 한 노인이 가끔씩 보이는데,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눈초리를 하고 있어 꿈결에서도 미안해지고... 어느 땐가부터는 파노라마처럼 호수가 있는 작은 마을이 보이는데, 호수를 중간에 두고 양쪽에 쫑긋 솟은 봉우리 두 개가 있고... 그 중 한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집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형식의 집이고... 

아니, 천만에요. 꿈을 꾸기 이전엔 인도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요가니 명상이니 하는 것도 그 이름은 바람결에 듣긴 했지만, 관심을 가진 적은 결단코 없었다오. 

그러니 눈에 익은 흑인들처럼 검지는 않은 낯익지 않은 검은 색 피부를 가진 꿈 속 노인이 인도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거나, 봉우리 위의 집이 사원이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상식도 없었지요. 

그렇게 일 년쯤이 지나간 어느 날, 무슨 책인가를 사러 들어갔던 대형서점에서 우연히 한 수행자의 얼굴이 커버로 장식된 요가 책을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끌리더군요. 그 책을 시발점으로 명상이며 인도에 관한 책들을 들쳐보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꿈 속의 노인이 인도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거군요. 그 날 이후, 점점 더 선명하게 더 자주 같은 꿈을 꾸게 되며, 어찌 되었건 인도에 가야겠구나.. 마음을 다지게 되었지요. 

맞아요. 그 날 이후 반 년을 못 넘기고 봄베이로 들어왔는데, 여기 푸쉬카르까지 오는데는 그로부터 또 한 달쯤 걸렸어요. 아뇨. 누군가에게 따로 묻진 않았어요. 그냥 움직이다보면 만날 것 같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푸쉬카르 들어서면 보게되는 이 풍경, 그래요. 꿈속에서 그토록 많이 보았던 그 풍경 그대로였어요. 지금 이 사원도 꿈 속 그대로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구요. 

그 노인요? 예, 제 스승의 스승이시자 제 스승의 아버님이신데, 지금 숲 속에서 은둔생활 하고 계셔요. 처음 뵙는데 그냥 웃기만 하시더라구요. 제 스승 말씀으로는 제가 그 분의 제자였는데, 사고로 일찍 죽어 제가 태어난 곳에서 다시 태어났대요. 그 분이 저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떠날 만하게 되자 부르시기 시작했다는거지요. 

새 비자를 얻기 위해 인근 국가를 다녀오거나 고국에 잠시 다녀온 외에는 다른 곳 가지 않고 이곳에서만 머물고 있어요. 

행복해요. 그리고 열심히 수행하고 있구요..." 

벽안의 이 가야뜨리는 그러나 푸쉬카르의 골목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생필품을 조달하기 위해서나 시내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는 스승 집에 들르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는 기회가 적지 않은 듯, 일없이 빈둥대며 푸쉬카르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을 더 스치듯 만났었다. 그리고 인체 내의 쿤다리니가 알려진 것처럼 7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수백 개가 된다며, 그 쿤다리니들을 색칠하여 구분한 만다라와도 같은 인체도를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던 가야뜨리의 스승도 그녀의 권유에 따라 만났었고. 

쥐어지지 않는 그 무엇을 잡으려는 자에게 꿈속에서 불러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 또한 큰 보탬이 되련만... 한정된 사람들만 만나며 숲 속에서 은둔생활을 한다는 노 수행자를 만나기 위하여 떠난다는 가야뜨리와 동행할 생각은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하릴없이 푸쉬카르 골목길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나를 끄집어낸 것은 나보다 더 작은 배낭을 지닌 영국 출신 떠돌이 데이빗이었다. 집 떠난 지 5년째라는 이 떠돌이는 독일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는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 배낭을 자신의 배낭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 배낭은 인도를 떠돌던 4년 여 동안 보아왔던 그 많은 배낭 중 내 것보다 작은 유일한 것이었다. 

호숫가의 싸구려 숙소 합숙방에서 만난 데이빗과 나는 배낭 때문에 별 말 나누지 않고도 의미 있는 미소를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만난 그가 며칠 후 고아를 향해 내려간다며 동행을 제안했을 때 망설임 없이 짐을 꾸리게 만든 것도 그의 상큼한 미소였다. 

정무진 _()_ 
(사)한인교류회 상임이사

2002년 7월 11일,  두륜산 대둔(흥)사 산간한담 기고
Posted by 한국인도교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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