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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판

작가 정민기의 '만인만상(萬人萬象)’전

“4·19를 기해 전시회를 연 것은 4·19가 청년정신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해서죠. 4·19는 미완의 혁명이지만 그 미완이

라는 점 때문에 영원성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서울 수유리 4·19민주묘지 정문 앞 ‘이후 갤러리’(대표 김홍주)에서 ‘만인만상(萬人萬象)’전을 기획한 젊은 작가 정민기(26)의 작품은 그 대답만큼이나 패기가 넘친다. 지난해 여름, 두 달 동안의 인도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인간군상을 한국적 질감의 광목천 위에 재현한 그의 작품은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셰헤라자데의 끝나지 않는 서사를 연상시킨다.

“인도에 다녀온 뒤 줄곧 걸었지요. 어느 날엔 저녁 6시에 시작한 걷기가 아침 7시까지 이어졌지요. 걷는 동안 제가 마주한 것은 밤이자 어둠인데 그게 제 안의 어둠을 직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어둠 속에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지요.”

계원디자인예술대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지난해 7월 서울 인사동 갤러리 포유에서의 ‘드로잉전’, 올 3월 성수동 뚝섬에서 열린 ‘언더바이브릿지’ 참가를 통해 인물 드로잉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목이 캔버스로 사용되는 게 특징이다. 광목이라는 질감은 그 자체로 삶의 뒷골목에서 만난 숱한 서민들의 애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폭 1m20㎝에 길이 6m짜리 캔버스를 가득 메운 인간군상은 그가 인도를 비롯해 네팔과 캄보디아 트레킹을 통해 접했던 아시아적 리얼리티를 물씬 풍긴다.

“사람의 영혼은 눈을 통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마다 얼굴 그 자체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지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다기보다는 수집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지요. 그건 얼굴에 대한 녹화나 녹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을 지켜보는 행위일 겁니다.”

‘광목 위에 먹’이 주된 표현기법이지만 한편으로 색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떤 색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좋아하는 색’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겠어요. 세상은 여러 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좋아하는 색으로 정해버리면 그 많은 색들이 부서져 없어지고 말지요. 그래서 모든 색이 섞인 검정색 먹 작업을 계속하고 있지요.”

광목과 먹과 4·19와 청년정신. 그게 ‘만인만상’의 핵심일 터다. 이달 말까지 열리는 전시에서는 드로잉 퍼포먼스도 함께 펼쳐진다(02-995-0419).

발췌 : 국민일보  쿠키뉴스  /  이광형 선임기자   [2010.04.18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