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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권 컬럼

알면 유익한 인도의 관습


FTA와 같은 개념의 CEPA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이 발효된 금년 2010년을 기점 삼아 한국과 인도의 경제, 정치적 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될 것이 기대된다.

1989년 이래, 각계 각층의 인도인들과 맺어진 인연들을 바탕 삼아 한국과 인도 사이의 문화 교류를 촉진시키는 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로썬 기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여 년 동안 한국과 인도의 정치, 문화 교류를 도모해오며, 한국인의 인도 이해 그리고 인도인의 한국 이해를 위해 나름으로 노력해왔지만, 상생의 관계를 돈독하게 이루기 위한 필요 기반들이 한국과 인도 사이에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지를 묻는다면, 솔직히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증가해온 한국인들의 인도로의 발길이 남긴 여행기 등의 저작물들이 한국과 다른 인도의 면모들을 소개하고 회자하고 있지만, 영웅담이나 이상 또는 환상을 지향하는 과장이거나, 상대의 가치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에서 비롯된 왜곡인 경우가 너무 많다. 왜곡과 과장에 의해 쌓인 개념이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없음은 분명하니, 경계해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우리 경제인들의 인도로의 발길은 더욱 더 잦아질 것이고, 이 땅에서 인도인들을 맞닥트릴 기회도 더욱 더 잦아질 것인데, 한국과 다른 인도의 기본 면모를 지적하는 이 글이 왜곡과 과장을 벗어나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10억이 넘는 인구의 80% 8억 명이 힌두교인이라고 계산되는 인도는 그러므로 힌두식 인사말 나마스떼 Namaste가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광범위하다고 표현했지만, 현대자동차가 자리잡고 있는 첸나이의 따밀 나두, 께랄라 주, 인도의 실리콘 벨리라는 뱅갈로르의 까르나따까 주 그리고 제 2의 실리콘 벨리라는 하이데라바드의 안드라 프라데쉬 주 등 인도의 남부 지역에선 통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마스떼는 내 안의 신성(神性)이 당신 안의 신성께 귀의(歸依)합니다라는 깊은 뜻을 지닌 탓에, 이 인사말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합장을 한다. 입으론 나마스떼하면서 뒷짐을 진다거나 합장을 하고 나마스떼라고 인사말 건네는 사람에게 몸을 젖힌 거만한 자세로 또는 다른 곳 쳐다보거나 다른 일하며 입으로만 나마스떼라고 응대하는 것은 인사의 기본에서 벗어난 일이라.. 이런 응대를 당하는 인도인들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합장한 채, 반갑게 웃는 얼굴로 몸을 약간 숙이며 나마스떼를 주고 받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상쾌하고, 그 뜻이 떠오를 때마다 불현듯 삶의 의미를 묻게 만드는 인사말이다.

나마스까르 Namaskar는 나마스떼의 존칭이다. 어른이나 귀인을 만났을 때 사용된다.

인도인들이 귀인이나 어른을 만나 존중, 존경의 뜻을 표하고자 할 땐 합장하고 나마스까르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허리를 굽혀 상대의 발에 손을 댄다. 종교 지도자 등에게 최고의 존경을 표할 땐, 몸을 숙여 두 손을 상대의 발에 댄 후 합장하여 자신의 이마에 대거나, 완전히 엎드려 이마를 상대의 발등에 대는 것으로 표시한다.

 

더운 지역의 사람들답게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아직도 음식을 손으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자리에선 자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자기네들끼리 모인 자리라면, 설사 점잖은 자리일지라도 칼이나 스푼 등으로 뜯거나 찢는 게 옹색해지면 손을 사용하는 것을 별로 망설이지 않는다. 음식을 즐기는 요소로 색, , 냄새뿐 만이 아니라 촉감도 포함시키는 게 인도인들을 비롯한 남방 사람들의 지론이다. 수저를 통해 먹는 당신네들은 손으로 느껴지는 음식의 촉감을 포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라고 반박하는 인도인들에게, 손으로 먹는 당신네들은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이다라고 욱박지르는 것은 편견이고 왜곡이다.

그들과 함께 촉감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편견과 왜곡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쟁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참는 게 좋다. 왼손은 용변을 처리하는 등의 깨끗하지 않은 일들을 처리하는 전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적선을 요구하는 길가의 거지에게 돈을 건넬 때도 왼손으로 줄 때와 오른 손으로 줄 때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그들의 용변을 항상 왼손으로 처리하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더 민감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건을 주고 받을 때도 오른 손을 이용하는 게 관습이다. 우리처럼 두 손으로 받는 게 공손하다는 개념도 없다. 깨끗한 오른 손이 하는 일에 자질구레한 일들 처리하는 왼 손이 따라다니며 오염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때문이리라.. 한 손으로 건네고, 한 손으로 받는다고 버릇 없고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길가 거지들의 돈 받는 태도다. 신호를 대기하고 있는 차 안의 사람들이나 길 가는 사람에게 끈질지게 적선(동냥)을 요구하던 거지들이 막상 돈을 받으면 아무 말 없이 (혹은 에게, 이거 밖에? 하는 눈짓 남기고) 또는 싱긋 웃으며 휙 돌아서는 경우를 곧잘 당한다. (그들의 상상이나 기대를 초월하는 큰 액수를 준다면, 탱큐 소리가 터져 나오는 등 이야기가 다르지만)

고마움을 모르거나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동냥을 받은 사람은 동냥을 준 사람에게 좋은 일 할 기회를 준 것이기에, 즉 적선할 기회를 준 것이기에.. 서로 주고 받은 것이지 일방적으로 주고 일방적으로 받은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싸가지 없는 존재들이라 저 모양 저 꼴로 사는 것이라고 열 내는 것은 편견이다. (받는 것도 물론 한 손으로 받는다. ^^)

 

1900년 초반, 유럽과 미주에 나가 힌두교 철학을 그들에게 설파하며 큰 호응을 얻었던 인도 성자가 깨끗하고 말끔해 보이는 유럽과 미주 사람들이 실제로는 며칠에 한번씩 목욕을 해도 게의치 않는 지저분한 관습을 지닌 위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들의 관습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몸을 씻고 신전이나 사원을 방문해 기도하지 않고선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인도 사람들인지라, 지저분해 보이는 인도인들이지만 깨끗해 보이는 미주, 유럽사람들보다 더 깨끗한 관습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완전 노출을 게의치 않는 관습은 아니다. 순례 온 사람들이 몸을 적시는 강가 Ganga(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의 그 어느 지점에서도, 히말라야 곳곳에서 만나는 노천 온천들 그 어느 곳에서도 완전 노출의 해방을 즐기는 인도인은 없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사우나 등에서 인도인들과 어울렸을 때, 완전 노출을 감행하는 것은 현지의 관습을 무시하는 오만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갈등이 빚어졌을 때, 큰소리 내며 화를 내는 사람은 덜 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우리처럼 목소리 크게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간주되는 관습과는 크게 다르다.

인도에 상주하는 한국인들이 점점 더 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러나 불행히도 곳곳에서 현지인들과 충돌을 일으키며 현지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듣고 있다.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시급히 검토해봐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도인들의 태도, 인도인들 특유의 눙치는 태도 등으로 열 받는 것은 인도 거주 외국인들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일일터인데, 유독 한국인들의 충돌이 현지인들에게 크게 부각되며, 한국인들이 오만불손하고 예의 없고 덜 떨어진 위인들로 취급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충돌이 벌어졌을 때, 못 마땅한 일을 당했을 때, 무조건 목청부터 올리는 한국인들의 버릇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목소리 키워야 이기는 것이 된 우리의 풍토, 벗어나야 할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아시아 시대라고 말하면서도, 아시아의 잠재력(생산력, 구매력) 21세기 지구촌의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분명히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 아시아 인들은 아시아 인들끼리의 교류 중심에 서구식 가치 기준이 뿌리박고 있는 것을 허용하며, 아시아 인들끼리 서로를 경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스스로를 항시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해왔던 중국도, 세계 4대 종교 중 불교와 힌두교를 배출한 종교와 철학의 나라 인도도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임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 인들의 맹점을 돌파하고, 아시아 인들의 장점들을 규합하여 자긍심 있는 아시아 인들의 문화를 창출해내는 한류 문화를 피워내는 것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우리 경제인들의 발걸음을 가볍고 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이다.

 

경제인들이 문화 교류 후원을 망설이지 말아야 할 이유다.

정창권 _()_ 
사단법인 한인교류회 상임이사
Indo-Korean Foundation

2010.03~04  'FTA 세상'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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